[배국환의 퍼스펙티브] 구조조정 전제로 재정의 비상한 역할 필요
중앙일보 2025-04-15
조기대선으로 출범할 새 정부의 재정 운용 방향

배국환 재정성과연구원 이사장, 전 기획재정부 2차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에 따라 오는 6월 3일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 조기 대선에서 선출되는 정부는 대통령의 공백을 하루라도 빨리 채우기 위해 간소한 절차를 거처 선거 바로 다음 날 임기를 시작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국민 앞에 약속한 공약을 재점검하고 이를 5년 동안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것이 공약을 담을 그릇인 국가재정 상태다.
팬데믹 아닌데도 재정적자 100조원 넘어
그렇다면 과연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재정은 어떤 상태일까. 지난해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가 100조원을 넘었다. 지난 8일 정부가 발표한 ‘2024 회계연도 국가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실질적인 나라 살림의 상태를 나타내는 관리재정수지가 104조 8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총수입보다 총지출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적자 규모가 100조원을 넘은 것은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112조원)과 2022년(117조원)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가 차지하는 비율은 4.1%였는데 이는 정부 재정준칙에 따른 관리 한도인 3%를 훌쩍 넘긴 것이다.
윤 정부 건전재정한다면서 감세, 명백한 정책의 실패 대규모 세수 결손 빚고, 재정은 전략자원 기능 못 해 재정이 만병통치약 될 순 없어…크게 뒤집는 수술 필요 재정준칙 한시적 유보하되 미래 위한 사업 선별 지원해야 |
적자 규모가 커진 주요 원인은 세수결손으로 총수입이 예상보다 덜 걷혔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수는 예상보다 30조 8000억원이 덜 걷혔다. 지난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시작할 때만 해도 52조원의 초과 세수가 걷히고 있었다. 이후 2023년부터 연속적으로 대규모 적자를 냈으며, 올해에도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대규모 감세로 세수 기반 약화
세수 펑크는 예산을 편성할 때 세입을 지나치게 과다 계상하거나, 회계연도 중에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세수가 덜 걷힐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세수결손은 경기가 침체되는 가운데 단행한 감세 조치로 인한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약 3년의 윤석열 정부 동안에 법인세·종합부동산세를 인하했고, 임시투자세액 공제 등의 감세 조치를 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법인세를 인하하면 투자와 고용이 확대돼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장기적으로 세입 기반이 확대되는 세수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규모 세수결손만 남겼을 뿐이다. 다음 정부는 상당히 약해진 세수 기반을 넘겨받게 된 것이다.

박경민 기자
재정의 건전성 정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자. 재정의 건전성 판단은 GDP 대비 국가부채와 재정수지 비율을 갖고 판단한다. 국가부채는 통화 당국의 통화량 분류(M1·M2·M3)처럼 3가지로 구분한다. 즉, 국가채무(D1), 일반정부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로 나눈다. 이 중에 국제기구(IMF·OECD)에서는 국가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까지 포함한 일반정부부채(D2)를 국가들의 비교에 유용한 통계로 활용한다.
박경민 기자
일반정부부채를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한국은 GDP 대비 60% 수준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5% 수준보다 크게 낮아 아직은 양호해 보인다. 그러나 최근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정도로 빠른 노령화 속도, 잠재성장률 하락 등을 고려할 때 안심해서는 안 되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국가채무의 증가 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간 재정적자가 많이 증가하면서 누적채무인 국가채무가 지난해에 1175조원에 이르렀다. GDP 대비로 볼 때 최근 5년 사이에 10%포인트 이상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리재정수지는 윤석열 정부 동안에 재정준칙에 따른 관리 목표인 3%를 계속 초과하고 있기 때문에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음으로 국민의 추가적인 부담 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향후 늘어날 수밖에 없는 복지지출을 감당하려면 국민 부담 확대가 불가피해진다. 지금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9% 언저리에 머물고 있어서 OECD 회원국 평균(36%)보다는 다소 낮은 상태다. 단순 계산으로 어느 정도는 여력이 있어 보인다.
윤 정부 재정적자 목표 달성 못 해
조기 대선에서 선출될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재정운영 상태를 ‘매의 눈’으로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우선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이라는 가치에 매몰된 채 아무런 색깔도 내지 못했다. 국가의 본질적인 기능이 재정이건만 단순히 돈만 배분했다고 평가될 가능성이 높다.

박경민 기자
2022년 5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코로나19 대응으로 재정이 아주 방만해졌다면서 건전재정 기조 확립을 선언했다. 이후 3년 내내 건전재정이라는 단어는 국가재정운용 방향에서 빠진 적이 없다.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결과는 한 번도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건전재정을 한다면서도 법인세 등을 감세하는 정책을 펼쳤다. 세수 기반을 스스로 흔든 것이다.
세금은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감세로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 세수가 증대될 것으로 본 것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건전재정을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으면서 감세를 단행한 것은 분명히 정책의 실패였다. 재정은 시대 상황에 따라 매우 탄력적이며 전략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지난 3년간은 건전재정으로 포장된 정책으로 인해 재정이 전략자원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물론 할 말이 많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재정을 너무 방만하게 운영해 재정의 운신 폭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정이 도대체 뭘 했지?”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문제다. 법인세와 부동산세를 감세해서 지지자들에게 호평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재정개혁으로 포퓰리즘 지출 정리해야
이제 한국의 재정은 700조원 시대를 눈앞에 앞두고 있다. 조기 대선으로 출범할 정부는 6~7월에 있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향후 5년의 재정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지금의 재정은 한마디로 건전하지도 않고 쓸 돈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다. 재정수지·국가채무 등의 지표에 모두 빨간 불이 켜져 있다.
물론 재정이 국민 모두를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과감한 수술이 필요하다. 재정에는 항상 군살이 붙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10여년 주기로 대대적인 군살 제거 작업을 했다. 방만한 부문에 곡소리 날 정도의 고통과 아픔을 주면서 군살을 정리했다.
새 정부가 향후 5년간 해야 할 공약을 지금의 재정에 그대로 담고자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결국 재정을 한번 뒤집지 않으면 안 된다. 제로베이스라는 말이 실감 나도록 해줘야 한다. 표를 의식하지 않고 국가 미래를 위해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특히 포퓰리즘이나 지지층 결집을 위한 지출, 기득권이 보장된 사업들, 알박기 사업들, 성과도 없이 연년세세 지출되는 사업 등 이런 것들이 모두 정리될 때 비로소 건강한 싹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지난 정부가 3년 내내 지출 구조화 작업을 외쳤지만, 재정은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왜 그랬는지 철저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재정 개혁은 기왕에 주고 있던 돈을 빼앗는 작업이다. 당연히 쉽지 않고 저항도 클 것이다. 국가 통치권자가 ‘재정 개혁 사령관’에게 전권을 주고 과감하게 밀어붙일 때 성공할 수 있다. 과거 5공 시절 재정개혁 작업이 성공했던 것은 통치권자가 전폭적인 신뢰를 재정 당국에 보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필요하면 재정 당국을 미국의 예산관리처(OMB)처럼 대통령실로 가져와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경제 위기 상황서 재정의 역할 중요
지난 10일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수출 야적장에 컨테이너들이 쌓여있다. 미국은 9일(현지시간)부터 세계 각국 대상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고 기본관세 10%만 부과하기로 했다. 한국 상품에 대한 관세율도 25%에서 10%로 낮아졌으나, 자동차·철강 등 이미 25% 관세가 적용 중인 품목들은 예외로 기존 세율이 유지된다.
지금은 경기침체가 심각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관세 전쟁’ 영향으로 수출마저 어려움이 가중되는 위기상황이다. 이럴 때 재정 구조조정을 하면서 미래지향적인 사업들로 ‘색깔 있는 재정’을 만든다면 희망이 있을 것이다.
재정준칙은 경제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전쟁이나 심각한 경기침체 등 비상상황에서 준칙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재정이 비상한 역할을 해야 한다. 새 정부는 재정 개혁을 전제로 국가 미래를 담보할 공약들을 선별해 재정에 먼저 담아야 한다. 지금은 재정 건전성보다 국민경제를 회복시켜서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이 급선무다.
배국환 재정성과연구원 이사장, 전 기획재정부 2차관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28552